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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보는 소년과 신사 모자 마리오네트

by 글조아 2024. 12. 20.

마침내 마리오네트를 속박하고 있던 줄이 끊어지며 그는 버려진 상자에서 눈을 떴다. 열쇠구멍 사이로 찬란하게 들어오던 햇살은 상자를 열자 곧 퀴퀴한 쓰레기 더미 위를 내리쬐는 햇살로 바뀌었다.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마저도 나무로 된 그는 마치 신사 모자를 쓴 목각인형처럼 보였다. 거미줄로 감겨있던 상자 밖으로 나오자 그는 오래도록 잊었던 마리오네트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왼쪽 발, 오른쪽 손은 위로, 또 왼쪽발...' 한참 춤을 추던 그는 자신의 머리로 강하게 내리쬐이는 햇볕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햇볕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그의 신사 모자가 반쯤 타들어간 뒤였다. 그는 추던 춤을 뒤로 하고 쓰레기 더미 밑 그늘로 향했다. 그늘 밑으로 앉은 그는 타들어간 신사 모자를 손에 쥐고 차가운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타닥이던 불씨들이 그의 모자 위로 서서히 꺼져 갔다. 얼마 뒤, 하늘에 내린 땅거미에 그는 그늘 밖으로 향했다. 쓰레기장을 지나 전봇대 앞 지붕사이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즈음, 어디선가 사박이는 소리가 났다. 골목 저 편에서 녹색 눈동자 두 개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뚜렷이 응시하는 녹색 눈동자에 그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녹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잠시 입이 벌어진 듯 위로 조그맣게 올라가다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눈동자가 전봇대 밑으로 다가오자 눈동자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더니 곧 귀가 뾰족한 고양이의 생김새가 되었다. 고양이는 그를 향해 몸을 움츠렀다 피며 빠르게 달려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어깨를 향한 순간, 어둠 속 무언가가 그를 낚아채어 그의 발 옆 캄캄한 구덩이 속으로 끌고 내려갔다.